네 기억은 믿지 마라! 설경구, 김남길, 설현 주연의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Memoir of a Murderer, 2017)' 리뷰
원작이 있는 작품을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는 것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잘해도 본전이기 때문이죠. 주옥같은 원작을 드라마나 영화화 하면서 말아먹는(?) 경우들이 있다보니, 어지간한 자신감 아니고서는 뛰어난 원작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 생각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 원작을 잘 살리면서도 영화만의 개성을 살린 작품이 있으니 바로 '살인자의 기억법(Memoir of a Murderer, 2017)'입니다.
작품정보
- 작품명 : 살인자의 기억법(Memoir of a Murderer)
- 개봉 : 2017년 9월 6일
-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장르 : 범죄, 스릴러
- 러닝타임 : 118분
- 감독 : 원신연 감독
- 출연 : 설경구, 김남길, 설현, 오달수, 황석정, 정인겸 등
- 평점 : 네이버 기준 8.17/10
- 원작정보 :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
시놉시스
예전에는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 우연히 접촉사고로 만나게 된 남자 태주에게서 자신과 같은 눈빛을 발견하고 그 역시 살인자임을 직감한다. 병수는 경찰에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신고하지만 태주가 그 경찰이었고, 아무도 병수의 말을 믿지 않는다. 태주는 은희 곁을 맴돌며 계속 병수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 병수는 혼자 태주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록하고 쫓지만 기억은 자꾸 끊기고, 오히려 살인 습관들이 되살아나며 병수는 망상과 실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진다. 다시 시작된 연쇄 살인사건, 놈의 짓이 맞을까! 네 기억은 믿지 마라! 그 놈은 살인자다!
등장인물
관람포인트
알츠하이머+연쇄살인범이라는 충격적 결합
알츠하이머를 앓는 전직 살인범이 기억의 신뢰성을 시험받으며 사건을 의심하고, 자신이 또 살인을 저질렀는지를 고민하는 구조는 참신합니다. ‘기억할 수 없는 자의 시선’이라는 시점이 미스터리에 짙고도 섬뜩한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그런 가운데 알츠하이머를 연기한 설경구의 연기가 단연 일품이었습니다. 알츠하이머 초입의 병수가 점차 망가지는 과정을 얼굴, 눈빛, 걸음걸이까지 체험하며 연기했습니다. 실제로 무보정 노화 메이크업 없이 10kg 체중 감량으로 몸을 현실적으로 변화시켰고, 이는 더욱 리얼한 감정 이입을 가능케 했습니다.
김남길의 미스터리한 얼굴 연기
김남길은 상냥하면서도 불안한 이중적 표정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태주라는 인물이 단순한 연약한 남자가 아닐 수 있다는 불협화음이 지속되고, 최후의 진위 대결까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반전과 시점 교차 구조
감독판에서는 10분이 추가됨으로써 다중 시점 디벨롭과 엔딩(감독판 제외)이 다르게 구성되어, 기억을 믿지 못하는 인물의 관점으로 관객도 끝까지 의심하게 만드는 긴장감을 더합니다.
시각적·음악적 분위기 조성
비 내리는 날씨의 외현, 낮은 조도, 불안한 음악이 어우러져 미스터리한 공포 분위기를 극대화했습니다. 특히 병수가 메모장·녹음기에 의지해 기억을 붙잡는 장면은 시각적 상징으로 기억과 현실의 균열을 보여줍니다.
수상내역
2017
- 17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올해의 남자배우상)
2018
- 36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스릴러 상)
- 10회 본 스릴러 국제영화제(심사위원 상)
개인적인 평가
'살인자의 기억법'은 ‘기억을 잃는 연쇄살인범’이라는 파격적 소재와 뛰어난 배우 연기, 감독 연출적 완성도가 결합해 심리 미스터리 스릴러의 걸작이라 평가할 만한 작품입니다.
먼저 소재 측면에서 주인공 김병수(설경구 분)의 알츠하이머는 '기억의 신뢰'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단순한 살인 추적극을 넘어 ‘기억과 진실’의 경계를 탐구하게 합니다. 자신과 같은 살인자의 눈빛을 가진 태주(김남길)를 마주치고 위협을 느낀 병수는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알츠하이머가 계속 그의 발목을 잡게 되죠. 자신의 불완전한 상태에도 딸을 지키기 위해 수시로 녹음도 하고 메모도 하지만, 이것이 착각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의 녹음기·메모장을 통한 자기 추적 방식은 디테일한 장면 연출로 시각화되며, 이는 주인공의 내적 고뇌와 잘 어우러졌습니다. 이를 위해 배우 설경구는 실제로도 10kg 넘게 감량하면서 체형 변화와 자연스러운 감정 변환을 통해 ‘망가져 가는 살인마’가 아닌, 스스로를 지키려 발버둥 치는 인간 병수를 연기하여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열혈사제로 보다 친숙한 배우 김남길이 의심스러운 인물인 태주를 맡아 연기했는데요. 어리숙하고 깨발랄할 것 같던 그에게 이런 잔혹하고도 냉철한 얼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배역을 잘 표현했습니다. 그의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에 불안감을 싣고, 관객이 끝까지 태주의 진의를 놓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또한 설현도 딸 은희 역으로서 병수와 태주 사이에서 감정의 균형추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합니다. 물론 그의 뛰어난 외모가 때로 작품 몰입을 방해할(?)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던하게 잘 연기한 것 같았습니다.
연출적으로는 기억과 망상 사이의 경계를 시각적인 상징과 편집으로 효과적으로 구현했습니다. 낮은 조도, 불안한 음악, 비 내리는 장면 등은 병수의 내면 세계와 겹쳐지며 긴장감을 지속시키는 장치가 됩니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들이 병수의 혼란을 직접 체험하도록 유도하여 영화의 긴장감을 한층 높여주었습니다. 특히 감독판 엔딩의 여운은 관객이 계속해서 기억을 믿어야 할지, 진실을 어디에 둬야 할지 혼란 상태로 끌고 가는 전략이 매우 잘 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병수와 태주가 보이는 액션이 주를 이루는데요. 물론 다른 액션 영화처럼 화려한 기술들을 선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깊이 있는 감정이 극대화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고무출처럼 몰아치다가도 느슨해지고,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지는 전개는 극강의 몰입도를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총평하자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와 연쇄살인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주제를 잘 병합한 김영하 작가의 소설 원작을 영화로서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신연 감독의 연출은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내면 세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켜 주며,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의 완성도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덥고 습한 장마철, 몰입감 뛰어난 스릴러 영화를 원하신다면 '살인자의 기억법' 어떠신가요? 이 작품은 현재 넷플릭스, 쿠팡플레이, Wavve, 왓챠, 애플티비, TVING 등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